구석기·신석기 시대
타제석기에서 간석기·농경으로 이어지는 생업·주거·사회 변화와 대표 유물·유적을 한능검 심화 기준으로 정리한다.
선사 시대 문항의 핵심은 시대 구분 기준(도구·토기·생업·주거)을 한 줄로 연결하는 것이다. 구석기는 타제석기·수렵채집·이동, 신석기는 간석기·빗살무늬토기·농경·움집으로 묶는다.
1. 시대 배경
한반도의 선사 시대는 지질·기후 변화 속에서 인류가 도구를 만들고 자연 자원을 이용하는 과정으로 이해한다. 빙하기와 간빙기가 반복되면서 동식물 분포가 달라졌고, 이에 따라 수렵·채집 방식과 이동 경로도 달라졌다. 한능검에서는 절대연대를 세밀히 묻기보다, 구석기→신석기→청동기→철기로 이어지는 문화 단계와 각 단계의 대표 지표를 묻는 비중이 높다.
구석기 시대는 약 70만 년 전 전후부터 시작되었다고 보는데, 유적마다 연대 논란이 있다. 시험에서는 ‘정확한 시작 연도’보다 뗀석기(타제석기) 사용·이동생활·동굴·막집이라는 생활상을 기억한다. 신석기 시대는 대략 기원전 8000년경부터로 보며, 기후가 온난해지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해안·강변 정착이 늘어나고 토기·간석기·초기 농경이 나타난다.
선사 = ‘왕조 연표’가 아니라 기술·생업·사회조직의 변화표다. 문항 보기에 왕·연호가 나오면 대개 오답 유도다.
2. 변화의 원인
기후·환경과 자원 이용
구석기에서 신석기로의 전환은 단일한 ‘발명’이 아니라, 환경 적응과 기술 축적의 결과다. 후빙기 온난화로 숲과 해안 자원이 풍부해지자, 이동 수렵만으로는 부족하던 식량을 어로·채집·초기 농경으로 보완할 수 있게 되었다. 정착 밀도가 높아지면 저장·조리·운반이 필요해지고, 토기와 간석기 수요가 커진다.
도구 제작 기술의 고도화
타제석기는 돌의 한쪽 또는 양면을 깨뜨려 날을 만든다. 주먹도끼·찍개·긁개·찌르개 등이 대표적이다. 신석기의 간석기는 갈아서 날을 세워 내구성과 정밀도를 높였다. 돌보습·돌괭이·돌낫·갈판·갈돌 등은 농경·가공과 직결된다. 시험에서는 주먹도끼=구석기, 반달돌칼=청동기(농경)처럼 시대를 건너뛰는 함정에 주의한다.
3. 진행 과정 — 구석기
도구와 유적
구석기인은 무리를 이루어 짐승을 사냥하고 열매·뿌리를 채집했다. 불의 사용은 조리·난방·맹수 방어에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대표적인 유적로는 경기도 연천 전곡리(아슐리안형 주먹도끼 출토로 유명), 충북 단양 수양개, 제주 고산리(후기~신석기 전환과 관련해 언급), 평안남도 상원 검은모루 동굴 등이 교재에 자주 등장한다.
주먹도끼 (전곡리)
양면을 쳐 날을 낸 타제석기. 유럽·아프리카 아슐리안 문화와의 비교로 출제되며, ‘간석기가 아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高주거·사회
주거는 동굴·바위그늘·막집 중심의 이동생활이다. 혈연 중심의 작은 무리 사회로, 잉여 생산과 계급 분화가 뚜렷하지 않다. ‘움집=구석기’로 연결하면 오답이다. 움집은 신석기 정착 생활의 상징이다.
구·타·이·동 — 구석기 · 타제석기 · 이동생활 · (동굴·막집). 네 글자로 보기를 걸러낸다.
4. 진행 과정 — 신석기
간석기·토기·생업
신석기 시대의 대표 지표는 간석기와 빗살무늬토기(빗살무늬 토기)다. 토기는 바닥이 뾰족하거나 둥근 형태가 많고, 기하학적 빗금·점열 문양이 특징이다. 농경(조·피 등 잡곡)과 목축·어로가 결합된 생업 구조를 보이며, 그물추·뼈바늘·낚시 바늘 등 어로·직물 관련 유물도 함께 출토된다.
빗살무늬토기
신석기 대표 토기. 민무늬토기(청동기)와 혼동하는 것이 최대 함정. ‘문양 있음=신석기 / 문양 없음(민무늬)=청동기’로 고정한다.
高움집과 씨족 사회
강가·해안가에 움집을 짓고 정착했다. 중앙에 화덕을 두고 기둥·벽체를 세운 구조가 전형적이다. 사회는 씨족 공동체 성격이 강하며, 평등성이 상대적으로 유지되는 편이다. 다만 후기로 가며 마을 규모가 커지고 의례·교환이 활발해지면서 차등 요소가 싹튼다.
서울 암사동 유적
한강변 신석기 취락. 움집 자리와 빗살무늬토기 출토로 ‘정착+농경·어로’ 생활상을 보여주는 대표 유적이다.
中주요 신석기 유적 (암기용)
- 서울 암사동 — 움집·빗살무늬토기
- 양양 오산리 — 초기 신석기·토기
- 부산 동삼동 — 패총·어로
- 웅기 굴포리 등 북부 유적 — 교재 지명 매칭
5. 결과와 영향
신석기적 정착·농경의 확장은 인구 증가와 마을 형성을 가져왔고, 잉여와 교환의 토대가 되었다. 이는 이후 청동기 시대의 군장 사회·고인돌·민무늬토기로 이어지는 ‘계급·국가 맹아’의 전제 조건이 된다. 한능검에서는 신석기를 ‘완전한 계급사회’로 서술하면 과잉이다. 평등 씨족 → (청동기) 군장·계급의 단계 구분을 유지한다.
6. 비교표
| 구분 | 구석기 | 신석기 |
|---|---|---|
| 도구 | 타제석기(주먹도끼·찍개·긁개) | 간석기(갈판·돌보습·돌낫 등) |
| 토기 | 없음(또는 극히 제한적 논의) | 빗살무늬토기 |
| 생업 | 수렵·채집 | 농경·목축·어로·채집 |
| 주거 | 동굴·막집, 이동 | 움집, 정착 |
| 사회 | 무리 사회 | 씨족 공동체 |
| 대표 유적 | 전곡리, 수양개 등 | 암사동, 동삼동, 오산리 등 |
7. 연표
- 전기 구석기대형 타제석기 · 주먹도끼 문화(전곡리 등)
- 중·후기 구석기몸돌·조각날 기법 발달 · 수양개 등
- 신석기 전기이른 토기 · 해안·강변 취락 형성
- 신석기 중·후기빗살무늬 성행 · 농경·어로 결합 · 움집 취락
- 청동기 전환민무늬토기·농경 심화·고인돌(다음 단원)
8. 시험 포인트 · 기출 함정 · 암기법
- 토기 문양으로 시대 가르기: 빗살무늬(신석기) vs 민무늬(청동기)
- 주거: 막집·동굴(구석기) vs 움집(신석기) vs 지상 가옥 확대(청동기 이후)
- 유적-유물 매칭: 전곡리-주먹도끼, 암사동-움집·빗살무늬
- ‘반달돌칼’을 신석기에 넣기 — 청동기 농경 유물이다.
- ‘고인돌’을 신석기 무덤으로 서술 — 청동기 지배층 무덤.
- 빗살무늬토기를 청동기 대표 토기로 보기.
- 구석기에 농경·목축이 본격화되었다고 서술하기.
빗-신 / 민-청 · 움집=신석기 · 주먹도끼=구석기. 보기에서 한 요소만 틀려도 즉시 탈락시킨다.
9. OX 체크
-
O
전곡리 유적에서는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출토되어 구석기 문화를 보여 준다.타제석기·구석기 매칭의 정석.
-
X
빗살무늬토기는 청동기 시대의 대표 토기이다.빗살무늬=신석기, 민무늬=청동기.
-
O
신석기 사람들은 움집에 정착하여 농경과 어로를 함께 영위하였다.정착+복합생업.
-
X
구석기 시대에는 반달돌칼로 벼를 수확하는 농경이 일반화되었다.반달돌칼·본격 농경은 청동기.
-
X
암사동 유적의 주거 형태는 이동식 막집이 중심이었다.암사동=움집 취락.
10. 예상 문제
-
밑줄 친 ‘이 시대’의 생활 모습으로 옳은 것은? (이 시대: 간석기를 만들고 빗살무늬토기를 사용하였다)
- ① 주먹도끼를 제작하고 동굴에서 이동 생활을 하였다.
- ② 움집을 짓고 농경·어로를 하였다.
- ③ 고인돌을 축조하고 청동 무기를 사용하였다.
- ④ 철제 농기구로 생산력이 크게 증대하였다.
정답 ② — 간석기·빗살무늬=신석기. ① 구석기, ③ 청동기, ④ 철기. -
다음 유물·유적의 연결이 옳은 것은?
- ① 전곡리 — 빗살무늬토기
- ② 암사동 — 주먹도끼
- ③ 전곡리 — 주먹도끼
- ④ 동삼동 — 고인돌
정답 ③ — 전곡리=주먹도끼. 암사동·동삼동은 신석기, 고인돌은 청동기. -
구석기와 신석기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 ① 왕호의 유무
- ② 한자의 사용 여부
- ③ 돌의 제작법(떼기/갈기)과 생업·주거의 변화
- ④ 불교 수용 여부
정답 ③ — 선사 구분의 기본 축.
심화 — 유적·유물 체크리스트
심화 시험은 ‘시대 총론’보다 구체 지명과 유물의 짝을 묻는다. 전곡리·수양개·덕천 승리산·상원 검은모루는 구석기, 암사동·미사리·부산 동삼동·울산 신암리·양양 오산리·봉산 지탑리 등은 신석기 취락·패총으로 묶는다. 패총(조개더미)은 해안·강변 어로 생활을 보여 주는 자료로, ‘농경만 했다’는 서술과 대비된다.
석기 제작에서는 몸돌에서 격지를 떼어 내는 기법, 돌날(석인) 문화 등이 후기 구석기 서술로 나온다. 신석기에는 갈판·갈돌로 도토리·잡곡을 가공하고, 그물추로 어로를 보완한다. 뼈바늘·가락바퀴는 옷·직물 가공의 증거로 보기에 섞여 나온다.
동삼동 패총
부산 영도. 신석기 어로·채집과 대외 교류 가능성을 보여 주는 패총 유적. ‘고인돌 유적’으로 바꾸면 오답.
中| 유물 | 시대 | 의미 |
|---|---|---|
| 주먹도끼 | 구석기 | 타제·수렵 도구 |
| 긁개·찌르개 | 구석기 | 가죽·수렵 가공 |
| 갈판·갈돌 | 신석기 | 식물 가공 |
| 그물추 | 신석기 | 어로 |
| 빗살무늬토기 | 신석기 | 저장·조리·정착 |
보기에 ‘벼 수확용 반달돌칼’이 있으면 청동기로 넘어간 것이다. 신석기 농경은 조·피 등 잡곡 중심의 초기 농경으로 서술하는 것이 안전하다.
움집 중앙 화덕을 ‘청동기 온돌’과 혼동하지 말 것. 또한 신석기 씨족 사회를 ‘노예제 국가’로 비약하지 않는다.
-
신석기 시대 유적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
- ① 연천 전곡리
- ② 서울 암사동
- ③ 강화 고인돌
- ④ 경주 천마총
정답 ② — ① 구석기, ③ 청동기, ④ 신라. -
구석기 생활상으로 옳지 않은 것은?
- ① 타제석기를 사용하였다.
- ② 수렵·채집 생활을 하였다.
- ③ 빗살무늬토기로 곡물을 저장하였다.
- ④ 무리를 이루어 이동하였다.
정답 ③
11. 단원 요약
한줄 정리
- 구석기: 타제석기 · 수렵채집 · 이동 · 전곡리 주먹도끼
- 신석기: 간석기 · 빗살무늬 · 농경·어로 · 움집 · 암사동
- 함정: 민무늬·고인돌·반달돌칼을 신석기에 넣지 말 것
심화 보강 — 주요 유적·석기 유형·신석기 생업
구석기 유적 심화
경기도 연천 전곡리는 한탄강 유역의 하안단구에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찍개·가로날도끼 등이 대량 출토된 대표 유적이다. 1978년 발견 이후 동아시아에서도 양면석기 전통이 존재함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교과서·시험에 고정된다. ‘전곡리=빗살무늬’로 연결하면 즉시 오답이다. 주먹도끼는 양면을 돌아가며 떼어 낸 타제석기로, 사냥·해체·목재 가공 등 다기능 도구로 해석된다.
충북 단양 수양개는 남한강 유역의 후기 구석기 유적으로, 몸돌·돌날(석인)·조각날 기법과 관련된 자료가 풍부하다. 전기의 대형 석기 중심 문화에서 후기의 정교한 격지·돌날 문화로 이행하는 양상을 보여 주는 지점으로 자주 묶인다. 수양개에서는 슴베찌르개 등 사냥용 첨두기도 함께 언급되며, ‘신석기 움집 유적’으로 바꾸어 서술하면 함정이다.
제주 고산리는 후기 구석기에서 신석기 초기로 넘어가는 전환기 성격이 강조된다. 이른 토기·석기 조합이 해안 환경 적응과 함께 출제되며, 본토의 전곡리·수양개와 시대·성격이 다름을 구분해야 한다. 함경북도 웅기(선봉) 굴포리는 북부 구석기 지명 매칭용으로 교재에 등장하고, 함경남도 동관진 일대 유적 역시 북부 선사 분포를 묻는 보기 소재가 된다. 지명만 외우지 말고 구석기=타제·이동 / 신석기=간석·정착이라는 생활상과 함께 붙인다.
수양개 돌날·몸돌 문화
후기 구석기의 정교한 격지·돌날 제작. 전곡리의 대형 주먹도끼 단계와 시기·기법을 구분하는 심화 포인트.
中
제주 고산리 이른 토기·석기
전환기 해안 적응 자료. ‘고산리=청동기 고인돌’로 연결하면 오답.
中석기 유형론 (시험용)
구석기 도구는 제작법과 형태로 분류한다. 주먹도끼는 양면 가공의 대형 타제석기, 찍개는 한쪽 또는 양쪽에 날을 낸 타격·해체 도구, 긁개는 가죽·목재 다듬기, 찌르개·슴베찌르개는 사냥용 첨두기로 정리한다. 후기에는 몸돌에서 돌날을 연속 생산하는 기법이 발달한다. 신석기로 가면 갈판·갈돌(분쇄), 돌보습·돌괭이(경작), 돌낫(수확), 그물추(어로)가 생업과 직결된다. ‘반달돌칼’은 청동기 수확구이므로 이 단원에 끌어들이면 감점이다.
신석기 어로·농경 증거
신석기 생업은 수렵·채집에 어로와 초기 농경이 더해진 복합 생업이다. 부산 동삼동·울산 신암리 등 패총에서는 조개·어류 뼈·낚시 바늘·뼈작살·그물추가 나와 해안 어로를 실증한다. 암사동·미사리 등 강변 취락에서는 빗살무늬토기·움집과 함께 조·피 등 잡곡 재배 흔적이 논의된다. 갈판·갈돌은 도토리·잡곡 가공의 물적 증거다. 시험에서는 ‘신석기=벼농사 완성’으로 과장하지 말고, 잡곡 중심의 초기 농경 + 어로로 서술하는 것이 안전하다. 뼈바늘·가락바퀴는 직물·의복 가공을 보여 주며, ‘청동기 위세품’과 혼동하지 않는다.
유적 지명 체크 (북·남)
- 전곡리·수양개·검은모루·굴포리·동관진 — 구석기 계열
- 고산리 — 전환·초기 신석기 성격
- 암사동·오산리·동삼동·지탑리 — 신석기 취락·패총
유적 문항은 ‘지명만’이 아니라 유물+생활상이 함께 맞아야 한다. 전곡리-주먹도끼-이동, 암사동-움집-빗살무늬, 동삼동-패총-어로.
수양개·전곡리를 신석기 농경 유적으로 서술하거나, 고산리를 고인돌 유적으로 바꾸기. 웅기·동관진을 신라·고려 지명으로 오인하지 말 것.
제작 기법과 생업을 잇는 서술
전기 구석기의 대형 석기 전통은 원석을 직접 깨뜨려 형태를 잡는 방식이 중심이고, 중·후기로 갈수록 미리 준비된 몸돌에서 규격화된 격지·돌날을 연속 생산하는 기술이 중요해진다. 수양개처럼 돌날 문화가 뚜렷한 유적은 ‘사냥 도구의 경량화·표준화’와 이동 생활의 효율을 동시에 보여 준다. 전곡리의 주먹도끼가 ‘무엇을 했는지’보다 ‘어떤 기술 전통에 속하는가’를 묻는 문항이 나오므로, 아슐리안형·양면석기라는 용어를 생활상(수렵채집·이동)과 함께 적는다.
신석기 어로 증거는 패총의 층위뿐 아니라 뼈·뿔 소재 낚시 바늘, 그물추의 무게·구멍 형태, 배·뗏목 운항을 암시하는 해안 입지로 읽는다. 농경 증거는 탄화 곡물·돌보습·갈판의 마모면·화덕 주변 식물 유체로 보완된다. 강변 움집 취락은 홍수·어로·밭농사를 한 공간에서 운영한 정착 전략이다. ‘신석기=완전 농경 사회’로 단정하거나, 구석기에 그물추·빗살무늬를 넣는 서술은 모두 감점이다. 웅기·동관진·고산리 지명은 지도 문항에서 북부·도서 분포를 묻는 보기이므로, 남부 암사동·동삼동과 쌍으로 외운다.
전주먹·수도날·고전환·웅동북 — 전곡리(주먹도끼), 수양개(돌날), 고산리(전환), 웅기·동관진(북부).